i dont know how to be me

  • 외로움

    이따금 외로움을 느낀다.

    지원 서류를 넣기로 마음먹은 후 월화수목, 나흘을 내리 미루며 괴로워하다 금요일에 몰아 해냈다.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네군데에 지원을 했다.

    그 다음 월요일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금요일로 면접을 잡았다.

    헤드헌터에게도 연락이 왔다. 경력기술과 자기소개서가 포함된 이력서를 양식에 맞춰 보내달라고 했다.

    이또한 괴로워하다 이틀만에 작성을 끝내 보냈다. 다시 연락을 받아 추가 설명이 필요한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잘 작성했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보다 빨리 취업이 되면 어쩌나 배부른 고민도 했다.

    금요일에 예정된 면접을 보았다. 거리가 너무 멀어 미련이 없던 곳이었다. 그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면접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할 말들을 정리했다. 이곳으로 가지 않더라도 앞으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왔다. 짐을 챙겨 한시간 반 거리를 떠났고, 10분 만에 면접이 끝났다.

    면접장의 나는 바보였다. 뭐 하나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최악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기대치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 결과였다.

    자신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초년생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온통 거짓 같았다.

    면접을 마치고 상담을 하러 갔다.

    많이 울었다. 나는 나를 포장할 수 없다. 포장이 거짓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거짓이 들통나면 비난받을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번주 내로 두 군데를 더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번에 지원했던 회사들 보다는 조금 더 큰 곳이다. 그 두 곳의 지원을 마치면 잠시 쉴 것이다. 락 페스티벌에 가고, 연휴에는 미리 예약해두었던 여행도 갈 것이다.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했던 곳에서는 연락이 없다. 이력서를 보낸 후 금요일과 월요일, 약 이틀의 시간이 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송별회식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전일 재택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나의 존재는 서서히 희미해지다 영영 사라질 참이다.

    이따금 외롭다. 이건 섭섭함일까?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일까?

    혼자. 혼자.

    불안.

  • tangled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듯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고양이 밥을 챙기고, 상추에 물을 주고, 달팽이 집을 치우고, 나도 밥을 먹고, (대체로) 비슷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일하다가, 돌아온 여자친구를 맞아서 또 저녁을 먹고. 루틴대로.

    자기 전 명상을 하려고 가만히 있으니 하루 동안 눌러두었던 불안이 마치 기다렸단 듯 떠올랐다.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9월이 끝나면 나는 백수가 된다. 그 안에 일을 구해야 할 것이다. 구하지 못하더라도 적극적인 구직을 시작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기 싫었다. 그냥 회피하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에 더 불안했다.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하지 않으려 할 내 고집을 알기에.

    그 이야기를 상담 선생님에게 했더니 새로운 퀘스트가 생겼다.

    이번 주 내로 최소 두 세 곳에 지원서를 넣어보기로. 그래야 한다고 했다.

    평가 받는 것이, 실패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을 내가 그저 하기 싫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나.

    아. 정말 하기 싫다. 지금 내 마음은 복잡하게 꼬여있다.

    상담 이후로는 시간이 가는 것이 더 미워졌다. 한 달의 기한이 일주일로 줄어든 기분이었다.

    느릿 느릿. 무기력. 루틴대로 잘 살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할 것이다.

    아. 하기 싫어!

    하지만 할 것이다.

    하기 싫다니까?

    싫은 게 아니라 두려운 거잖아.

    아니 싫은데 어쩌라고.

    해.

    싫어.

    해.

    알았어. 하면 되잖아. 흥.

  • 고집 고집 똥고집

    나는 고집이 엄청 세다.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깨닫게 된 건 학원 선생님의 말 덕분이다.

    지인에게 나를 고집이 엄청 센데 예쁜 아이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학원에선 그렇게 까지 고집을 부렸던 것 같지 않은데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충격이었다.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지난 주 상담에서였다.

    내 불안의 주 원인은 대부분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지적을 받거나 트러블이 생기면 큰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불안에 대한 맞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간단한 해결책을 무시하고 늘 반대로 달려갔다. 오히려 상대에게 공격성을 표출하거나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식.

    일종의 고집이었다.

    기분이 좀 안 좋아도 말은 좋게 할 수 있잖아. 자존심 같은 건 좀 버려도 돼. 그게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길이라면 더더욱.

    그걸 깨닫고 나자 일상에서도 내가 부리고 있던 똥고집들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양치를 하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재테크에 대한 것까지.

    사실 내게는 돈을 더 모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내재해있었다. 그런데 투자라던지 재테크에 대해 생각하면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이런 돈 놀음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자본주의 혐오하기 등.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다. 뭐라도 작은 거라도 하면 되지. 나를 위한 일이라면 할 수 있지 않나?

    요즈음 재택근무를 하면서 기상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9시 다 되어서 일어나 할 일을 하고 나면 10시가 다 되어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운동하고 밥 챙겨 먹는답시고 1시간씩 또 날려버리니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은 없음에도 죄책감이 밀려왔다. 일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이었다.

    어제는 운동을 마치고 스트레스를 하는 중에 그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이 밀려왔다.

    그 불안은 곧 (언제나처럼) 타인에 대한 공격이 되었다. 그러게 데드라인을 정확하게 정해주면 내가 불안할 일이 없는데. 업무 경계가 모호해서 이렇게 된 거야.

    그 순간 깨달았다.

    또 나의 똥고집이 발현되었구나.

    알아차린 순간 생각을 멈추고 다음 날 부터는 일어나는 시간이라도 앞당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침 8시로 알람을 맞췄다.

    오늘 8시에 일어나니 씻고, 고양이 밥을 주고, 달팽이 밥을 주고, 상추에 물을 주고, 내 밥까지 챙겨먹고 커피를 내렸는데도 8시 50분이었다. 그래서 9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더 이상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수면 시간은 줄었는데 몸은 더 가벼웠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고집을 내려놓으면 보이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해결책.

    뽀나스로 이 얘기를 하고 나서 상담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다. 후헤헤.

  • nothing happens

    집에서 일하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좋던 싫던 끊기지 않던 외부의 자극이 사라지자 내면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회사에 다녔던 1년 반 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쉽게 말하면 외로웠다. 화가 날 때 마음껏 욕을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었지만, 내가 지쳐 보일 때 괜찮냐고 물어봐 줄 사람이 없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점심 메뉴를 대신 골라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불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기 전에 침입해서 일을 던져줄 사람이 없었다.

    혼자였다. 모든 판단과 해석을 혼자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매사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월요일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 때문에 일주일을 내리 울었다.

    이 현상을 나는 처음에 내가 약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게 된 것이라고.

    상담 선생님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했다.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닥칠 때에 비해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분산 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약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다른 것이다. 분산이 안 되어서 문제라면 분산을 하면 된다.

    네모 찾기. 그거 말고, 밖에를 나가 볼까?

    잠시 걸으며 하늘을 보았다. 내가 여름이라는 계절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하늘이다.

    아무 일이 없었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구름 구름.

    see? nothing happens.

  • 그거 아니라니까 아니라느뇽

    작년에 산 컴퓨터가 계속 말썽이다. 재택근무 용으로 추천을 받아서 꽤 높은 스펙으로 맞춘 컴퓨터였는데.

    증상을 한국어로도 검색해보고 영어로도 검색해봤다. 온갖 해결법을 다 따라해봐도 고쳐지지 않았다. 챗지피티의 도움도 받아봤지만 그럴수록 더 수렁으로 빠질 뿐이었다. 챗지피티는 자꾸 이상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나는 화를 냈다.

    그거 아니야. 안 돼. 똑같아. 바뀌지 않아. 나한테는 해당이 안 돼. 아니라고 했잖아.

    결국 답은 포맷과 윈도우 재설치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 돌아가는 컴퓨터를 보고 안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 또 다시 포맷. 재설치. 포맷. 재설치. 지우고. 지우고. 쌓고. 쌓고.

    원인은 모른 채 나는 몇 번이고 새로 시작하며, 몇 번이고 망쳐버렸다.

    명상을 하는 중에 잡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잡생각이 드는 것을 알아차리자 마자 다시 호흡에 집중하던 상태로 돌아오면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리셋하면 된다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불안함과 슬픔 같은 감정은 그저 흘러가도록 두면 된다고 했다.

    이건 나에게 맞는 방법일까?

    그렇다면 왜 나의 불안은 흘러가지 않는지. 흘려보내려고 애쓰고 애쓰고, 몇 번이고 돌아와도, 끈끈이처럼 달라붙는지.

    끈적거리고, 더럽고, 아프고, 가슴에 남아 숨 쉬기 힘들게 하는 무언가의 찌꺼기. 몇 번을 리셋해도 사라지지 않는.

    지우고, 채워도. 지우고. 지워도. 지워지는. 지워지지 않는.

    위잉 하고 컴퓨터가 켜지면,

    윈도우를 불러오지 못했다는 알림이 뜬다.

  • 네모의 꿈

    상담 선생님께서 ‘네모 찾기’ 스킬을 알려주셨다. 불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 같을 때는 생각을 멈추고 주변의 네모난 것들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네모를 다 찾고도 진정되지 않으면 그 다음엔 동그라미를 찾고, 동그라미 다음에는 빨주노초파남보 색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하루종일 네모만 찾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 네모난 것들은 얼마나 많던지. 일단 이 방만 해도 말이다.

    •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온리전에서 산 2025 미니 달력
    • 뽀모도로 시계
    • 포토카드와 탑로더
    • 지겨워라 지겨워, 모니터 두 개
    • 키보드의 수많은 자판들
    • 상담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적었던, 구깃구깃한 계획표. 2주 안에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 온리전 럭키드로우에서 3등 당첨되어 받은 포스터
    • 수많은 CD 음반들
    • 수많은 책들
    • 외장하드와 외장하드 케이스
    • 배터리가 다 된 E북 리더
    • 달팽이 집
    • 리빙박스
    • 문짝
    • 창문
    • 여자친구가 오일 파스텔로 그린 고양이 그림이 담긴 액자

    끝이 없다. 오늘은 동그라미는 찾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네모 네모 네모의 꿈. 바로 헤엄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향하는 곳이 수면임을 알고 올라가는 것이다.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는 것이다.

    햇빛의 뜨거움을 아는 것이다.